제목 : 그 중에 하나가

성경 : 누가복음 17:12-19

자신의 믿음대로 인생이 만들어 집니다. 문둥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으면 낫게 되고, 살 것이라고 믿으면 살고, 망한다고 믿으면 망하게 되고, 성공한다고 믿으면 성공하게 됩니다. 삶은 믿음대로 되기도 하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 없는 사람이 믿음대로 된 경우는 단 함 번도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믿음대로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이 다릅니다. 일의 태도가 다르고, 수고, 희생, 헌신을 가능하게 하고, 기쁨과 행복을 갖게 합니다. 대부분 믿음이 없는 사람은 느리고, 핑계대고, 불평하고, 비난합니다. 자신의 일과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는 믿음, 확신이 결정합니다.

사람이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사람을 살립니다. 인생보다, 생명보다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보다 믿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믿음 없이는 살아봐야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거룩한 인생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믿음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디오 녹음 설교가 조금 길어서 업로드 용량을 초과 하였습니다. 다음 부터는 조금 짧게 해야 겠습니다. 참 좋은 내용인데?아쉽습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달동네의 그리스도

성경 : 요한복은 1:43-39

예수님은 성지에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사렛에서 나시고, 그 곳에서 세상을 구원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나 로마 같은 대 도시가 아닌 갈릴리 나사렛 촌구석에서 나서 30년을 사셨습니다. 해외여행, 유학도 한 번 안 하고, 목수로 살다가 3년간 구세주로 사역 하셨습니다.

가장 천한 동네에 나셨으나, 그 곳이 성지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성지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일이 이루어지는 곳,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곳이 성지입니다.

성도는 좋은 곳에 가려 하지 말고 있는 곳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좋은 사람을 찾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교회를 찾지 말고,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일터를 찾지 말고, 좋은 일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성지고, 내가 하는 일이 성직입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초상집과 잔치 집

성경 : 눅8:41-56

슬픔과 기쁨은 단짝입니다. 슬픔 속에서 기쁨을, 기쁨 속에서 슬픔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슬픔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기쁨이 갈 것을 염려하지 말라. 지금 슬프다면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다음 순서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슬픔이 연이어서 오면 기쁨도 연이어서 올 것입니다.

기쁠 때는 충분히 기뻐하고, 슬플 때는 걱정하지 말고 울면 됩니다. 울다보면 슬픔도 지나갑니다.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기뻐하지도 말라, 지나치면 슬픔도 기쁨도 아픔이 됩니다. 그래서 아픔을 달래기 위해 기쁨과 슬픔은 번갈아 찾아오는 것입니다.

슬픔은 슬픔이고, 기쁨은 기쁨이고 인생은 인생입니다. 그저 하루하루 성실히 살다보면 슬픔 속에서도 기쁨 속에서도 인생은 성숙하고 삶은 점점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지금,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구요? 그렇다면 지금은 기쁨과 슬픔이 균형을 이룬 평화의 때가 분명합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부활의 현장

성경 : 마태복음 27:65-28:20

거짓은 만들어 지면 절반은 속아 넘어갑니다. 믿기 싫은 사람들과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은 거짓을 받아들입니다. 명백한 근거가 있고, 논리에 맞지 않아도 거짓을 선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에도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병사들이 만들어 낸 헛소문, 믿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은폐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헛소문을 만들어 내고 진리를 은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에 도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진리에 도전해선 안 됩니다. 거룩한 것을 반대해서도 안 됩니다. 그 것은 인류의 희망을 앗아가는 악한 짓입니다. 진리를 감추는 사람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못하고, 죽음이 모든 것의 종결이라는 오해를 갖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이 성도의 최후 희망입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십자가의 그리스도3, 저가 남은 구원 하였으되

성경 : 마가복음 14:24-32

위대한 일은 위대한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일은 환경이나 여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 한 분에 의해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 되었습니다.

세상은 제 정신이 아닙니다. 조난당해서 정신을 잃은 사람들과 같고, 가치관이 무너져 버린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히스테리 적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의 지도자가 정신을 차리면 모든 사람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어느 곳에서도 본분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성도라는 말은 남을 위한 사람이라는 뜻과 같은 의미입니다. 성도는 욕심쟁이, 깍쟁이, 얄미운 사람이 되선 안 됩니다. 후한 사람, 넉넉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성도는 최후의 1인입니다. 그가 있는 곳에서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고, 함께 있는 사람들을 정신 차리게 하는 사람입니다.

  이 번 주 설교 녹음은 녹은기를 끄지 않아서 너무 많이 녹음 된 관계로 용량이 많아서 첨부가 안됩니다.
용량을 줄이게 되면 올리겠습니다.  (언제 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십자가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주변인물2

성경 : 마가복음 14:15-23

운동을 시작하고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근육통에 대한 생각입니다. 근육통은 좋은 것입니다. 근육이 아픈 것은 새로운 근육이 개발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근육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근육통은 살아있는 즐거움입니다. 근육통증은 건강을 위한 필연의 과정입니다. 근육통 없이는 근육이 생기지 않듯이, 아픔, 새로운 고난 없이는 삶의 폭이 넓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도 아프지 않고, 어렵지도 않고 인생을 살려 하는 것은 환자가 되어서 집 안에 누워 살기로 결심한 사람과 같습니다. 통증을 즐기는 사람만이 건강한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인생의 아픔도 성숙하기 위한 필연의 과정입니다. 주님의 고난에, 교회의 고난에 동참 하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십자가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주변인물

성경 : 마가복음 14:15-23

대통령이 돌아누우면 국민의 얼굴에 그림자가 집니다. 나라가 망합니다. 가장이 얼굴을 돌리면 가정이 무너지고, 대표가 위치를 지키지 않으면 소속 원이 함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결정권자는 가장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할 사람입니다. 지도자는 항상 바르게 앉고, 바르게 서고, 바르게 걷고,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 아래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그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결정권자는, 항상 옳은 결정만 해야 합니다. 언제나 긍정적이어야 하고, 죽을 상황에서도 살 길을 찾아야 하고, 실망 가운데서 희망을 찾아내야합니다. 말 하는 것, 행동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이 될지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항상 행복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아름다운 것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교회입니다. 혹시 잘 못 되면? 어려워지면?,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세요, 나쁜 말을 꺼내면 나빠지게 돼 있습니다. 좋은 말만 하세요.

Posted by 김홍식

제목 : 나도 못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성경 : 마 7:3-12

사자는 사자가 키워야 사자가 됩니다. 사람에게 양육 받은 사자는 맹수가 아니라 가축이 됩니다. 사람이 키운 사자에게 야생의 기질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만큼 할 수 있고, 학생은 교사만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기대하면 갈등과 오해만 생기게 됩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 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면 안 됩니다. 남이 하는 것은 쉬워 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못하는 것을 남에게 하라고 하게 됩니다.

내가 어려운 것은 남에게도 어렵습니다. 내가 좋은 것은 남에게도 좋습니다. 내가 아까운 것은 남에게도 아까운 것입니다.

사이좋게 살고 싶으면 아무 것도 강요하지 마세요. 자신이 못 하면 말도 꺼내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하면 됩니다. 사줄 거나 도와줄 거 아니면 눈도 마주치지 마세요.

Posted by 김홍식

제목 : 눈높이만 달라도 세상이 다르다

성경 : 누가복음 7:39-48

산 아래서 보는 세상과 산 위에서 보는 세상은 다릅니다, 앞에서 뒤에서, 오른쪽, 왼쪽에서 보는 세상은 다른 세상입니다. 아이 때, 보는 하늘과 청년 때 보는 하늘은 같은 하늘이지만 다르고, 남자가 보는 겨울 눈과 여자가 보는 눈은 다릅니다. 남자는 눈을 보며 운전을 생각 하고 여자는 여행을 생각합니다.

불평하기 전에 자신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 내가 보는 것을 상대는 전혀 못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안 닦는다고 불평 해 봐야, 남을 억울하게만 할뿐입니다.

시각이 높은 사람은 자세를 낮춰서 보고, 낮은 사람은 높여서 봐야 남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다가 아닙니다. 조금만 위에서 보면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배우고 터득한 가치는 존재의 가치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사람을 세상가치로 보지 말고 창조 가치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도 무시할 수 업고, 쓸모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사람을 보는 눈

성경 : 누가복음 7:39-48

깊은 바다에서 30평 아파트 보다 큰 가오리를 발견한 사람이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친구들은 비교 할 수 있는 물고기가 없어서 크기를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전문가를 찾아갔지만 역시 같은 대답을 듣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멸치라도 한 마리 같이 찍혔으면 좋았을텐데......”

잘난 사람의 잘난 것을 알기 위해서는 못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멸치, 피라미라도 있어야 가오리의 크기를 잴 수 있는 것처럼, 잘난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못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존재의 크기는 다를 지라도 존재의 가치는 모두 동일합니다. 오히려 작은 것은 작다는 것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큰 것 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도 쓸 데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직 존재의미를 찾아내지 못 했을 뿐입니다.



Posted by 김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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