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도라면 3 죽을 만큼 가치 있는 일

성경 : 로마서 14:5-9

예수님은 남을 위해 살고 남을 위해 죽는 선구자가 되셨습니다. 남을 위해 사는 일

은 구세주가 나무에 달려 죽을 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친히 자신의 목숨을 희생함으

로 주님은 남을 위해 죽는 본을 보이셨다. 성도가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죽는 것만큼의

가치를 가진 일입니다. 한 때 공부해서 남 주라는 말이 유행 한 때가 있었습니다.

공부해서 남주냐? 는 말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자기에게 좋은 일이라는 의미였습니

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자기를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바꾼 것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공부해서 남 주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남을 위해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도에게 주신 모든 것은 남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은 성도에게는 보람도, 기쁨도, 의미

도 없습니다. 현대인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돈, 그 돈을 벌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단 한 푼도 아까워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돈도

나누는 사람입니다. 공부해서 남 주고, 돈 벌어서 남 주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아프리카에 뻥튀기 기계를 가지고 가서 먹을 수 없이 말라비틀어진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며 사는 한국 사람이 있습니다. 우물 파는 기계를 가지고

가서 먹을 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펌프를 심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개

발한 대량 수확 하는 옥수수를 무료로 나누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정한 성도라

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새날 창조

성경 : 로마서 14:5-9

어느 나라나 날에 대한 미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하기 위해서는 손 없는 날이 좋다는 말들을 합니다. 손 있다는 말은 악귀, 악신이 움직이는 날이라는 뜻인데, 동서남북이 각기 다르다고 합니다. 한 달에 손이 드는 날은 24일이므로 이사하기 좋은 날은 6일밖에 안 됩니다. 이런 날에 대한 인식은 미신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날은 좋은 날로 만드셨습니다. 나쁜 날이란 없습니다. 사람이 좋게 생각하면 좋은 날이고, 나쁘게 생각 하면 나쁜 날이 됩니다. 비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는 말은 이사하는 날 비가와도 기분 좋게 이사하라고 만든 말입니다.

신앙인은 절대 날을 따지지 않습니다. 모든 날을 경건하게, 모든 날을 기분 좋게 지내면 됩니다. 특별한 날에 싸우는 가족들이 더 많습니다. 왜 늦었냐? 옷이 뭐냐? 오늘 같은 날까지? 하면서 다른 날은 참아도 오늘만은 못 참아? 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날 더 참아야 합니다. 특별한 날은 특별히 싸우지 말고, 특별히 용서하고, 특별히 참아야 하는 날입니다. 날 보다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중요한 날에는 사람의 마음이 더 옹졸해 질 수 있습니다. 날을 중요시 하는 만큼 사람을 가볍게 여깁니다. 사람이 날보다 더 중요합니다.

Posted by 김홍식
2008. 11. 30. 23:00

제목 : 감사

성경 : 살전 5:18, 고전 11:12

감사는 습관입니다. 찾으면 있고, 안 찾으면 없습니다. 언제든 불평보다는 감사하는 것이 낫습니다. 좋을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환경 완성이 아니라 마음자세입니다. 완전한 환경, 에덴동산을 주셨으나 인간은 거기서도 불평하고 타락 했습니다. 사람은 환경에 의해서 성숙하지 않습니다.

감사와 불평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택은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계속 감사할 일이 생기고, 불평하면 더 불평할 일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똑 같은 상황에서 감사하고, 불평합니다. 불평은 망할 사람이 하는 것, 감사는 성공할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걱정은 게으른 사람이 하는 것, 위로는 부지런한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화내는 사람은 생각이 좁은 사람이고, 친절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감사와 위로와 친절을 선택하세요. 감사와 불평의 결과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비웃지 말라

성경 : 누가복음 8:52-56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가운데 예수님인 죽은 아이를 일으키셨습니다. 죽은 아이가 살아나는 것 하고 비웃는 것은 아무 상관없습니다. 다. 비웃음이 하는 일은 용기를 빼앗고, 의욕이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비웃음에 빠지면 속게 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못 할 것처럼 생각 하게 되고, 즐거웠던 마음이 슬퍼지고 긍정적인 마음이 부정적 인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남들의 눈짓으로 속상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을 무시할 필요도 없고, 남에게 매달릴 필요도 없습니다. 살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이라면 사람들의 눈길과 비웃음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비웃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지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비웃음 속에서도 꽃은 피듯이 인생도 어떤 상황이든 열심히 살면 결실을 맺게 돼 있습니다. 누구라도 비웃지 말고, 비웃음에 걸리려서 넘어져도 안 됩니다.

비웃음은 지식이 적은 사람들의 특기이고, 어리석고 마음이 좁은 사람들의 무기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무기에 찔리지 말고, 어리석은 무기를 들고 사람을 찌르지도 마세요. 성도는 절대 남을 비웃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든 마주 보고 웃어 주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지혜와 지식 7, 왕과 나

성경 : 역대하 1:6-12

백성이 왕을 위해 있지 않고 왕이 백성을 위해 있습니다. 사람은 신분이 높아질수록 자신과 남의 관계를 착각합니다. 스스로 주인공이 되려합니다. 혼자 잘난 주인공은 없습니다. 주인공의 책임은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조연을 돌보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란 없습니다. 낮은 사람을 돌볼 직책과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자리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대단한 줄 착각합니다. 사람은 위치만 바뀌면 왕도 되고 거지도 됩니다. 천재도 되고 바보도 될 수 있습니다. 위치를 바꾸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잘 지키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의 자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리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 관계 된 사람을 책임 져야 합니다. 왕도 한 영혼 백성도 한 영혼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왕이나 나나 다를 바 없습니다. 대통령도 한 영혼 나도 한 영혼입니다. 다만 위치가 다를 뿐입니다. 대통령은 백성을 책임 져야 하고, 나는 가족을 책임 져야 할 사람입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지혜와 지식 5,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

성경 : 역대하 1:6-12

사람은 거룩한 것과 권위와 전통을 거부하려는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유 없이 반대 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잘 하는 사람을 방해하고 싶은 심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른 전통은 오랜 역사의 결정체입니다. 악한 본성이 사람을 곁길로 가게 합니다. 솔로몬의 가장 큰 지혜는 생모를 찾아 준 것도, 공중 정원도, 천 편의 논문도, 경제능력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은 것이 그의 가장 큰 지혜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바른 길로 들어섰습니다. 정권 초기에, 왕의 직분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께 매달린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과 직분의 완성이 스스로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습니다.

모든 일의 결국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큰일을 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겨도 끝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의 끝에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면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순종하고 그 뜻을 따라 산 것 외에 드릴 것은 없습니다. 자신이 있는 위치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회적, 가정적, 신앙적 위치에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지혜와 지식 4, 지혜가 성공을 부른다

성경 : 역대하 1:6-12

솔로몬은 지혜의 왕입니다. 지혜 하나로 모든 업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전쟁과 용맹의 왕이었으나, 아들은 평화와 번영의 왕이었습니다. 싸우는 일보다 건축하는 일을 더 많이 했습니다. 20년간 성전과 왕궁을 짓고, 그 후 각 지역에 든든한 성을 지었습니다. 남아있는 가나안 족속, 주변 민족을 군인과 일군으로 고용해서 돈을 주며 일을 시켰습니다. 힘없는 민족도 노예로 부리지 않았습니다. 충분한 월급을 주었습니다. 주변 국가와도 무역을 통해 탄탄한 국제관계를 맺었습니다. 상대국의 특산물을 수입 하고 돈을 지불하며, 가장 큰 거래처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고대의 국가에서 볼 수 없는 경제대통령입니다. 싸움보다 상호 교류를 성사시킵니다. 그들에게 월급을 주며 배신 할 수 없게 하고, 주요 고객인 국가가 되어 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 하였습니다. 경제적 관계를 통해 전쟁을 예방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뜻 한 바를 이루려면 가장 먼저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특별히 거룩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모르는 성도로는 진정한 의미의 성공을 할 수 없습니다. 세상 지식을 가지고 세상에선 성공해도, 신앙인으로선 성공 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지식 위에 세상을 아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성도는 거룩한 성공을 이루어 내는 사람입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지혜와 지식 3, 참 지식

성경 : 역대하 1:6-12

참 지혜는 사람을 살리는 생각입니다. 자신을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사람을 살고, 교회와 나라를 살리는 생각입니다. 상처를 주고,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는 지식은 썩고 병든 지식입니다. 남들보다 많이 알고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해도, 죽이는 지식은 가짜 지식입니다. 죽을 상황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은 돈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바른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은 죽을 상황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살만 할 때 사는 것은 지혜가 없어도 가능합니다. 살기 어려운 때, 죽을 것 같은 때에 살기 위해서 참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지식을 쌓는 만큼 얻을 확률이 많습니다. 지혜가 사람을 살립니다. 성도는 기사회생 하는 사람, 기막힌 회생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이 생각 하는 이상의 뛰어난 삶의 의지, 가치관과 불굴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 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죽어서 나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나 하는 말입니다. 살아남는 자에게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집니다. 죽는 것이 의미를 갖는 것은 하나님이 데려 가실 때뿐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기 전에, 생명이 다하기 전까지는 살아남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살리는 데 있습니다. 순교는 세상을 살리기 위한 죽음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지혜와 지식 2, 왕의 자기 인식

성경 : 역대하 1:6-12

왕의 자리를 어떻게 인식 하느냐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결정 됩니다. 왕의 자리를 먹고 놀며 욕심을 채우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왕 한 사람만 즐겁고 모든 사람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일하며 봉사하고 베푸는 자리라고 생각 하면 왕과 함께 모든 사람들이 살만한 나라가 됩니다. 왕의 자리는 권력과 힘을 부리는 자리가 아니라 공평과 정의를 세우는 자리입니다. 자신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백성을 위한 자리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자신의 자리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금 자신의 위치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남편의 자리, 아내의 자리, 성도의 위치, 집사, 장로의 위치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알아야 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가장 필요 한 것은 직분에 맞는 지혜와 지식입니다. 높은 위치에 잇는 사람은 누구라도 공평하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더가 되려는 사람은 공부해야 합니다. 지혜와 지식을 구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재물에 눈이 어두운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깨닫지 못하고 잘 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알지 못하고는 판단 할 수 없습니다.

Posted by 김홍식

제목 : 지혜와 지식 1, 일천번제

성경 : 역대하 1:6-12

일천번제는 솔로몬의 믿음의 흔적입니다. 또한 지혜를 위한 솔로몬의 투자입니다. 솔로몬이 남긴 가장 큰 믿음의 유산은 성전 건축도, 궁궐 건축도, 천개의 논문도 아닙니다. 다른 모든 것은 기록만 남아 있지만 일천번제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 것을 본받아 교회마다 솔로몬처럼 정성을 다하자는 의미로 일천번제라는 제목의 헌금을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천 번의 헌금을 드리는 정도의 가벼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양을 일천 번을 잡아서 드리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일천번제는 솔로몬이 하나님을 얼마나 간절히 기대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누구에 의해서도 다시 반복되지 않은 역사적 유일의 사건입니다.

일천번제가 하나님을 만나는 마술과 같은 원칙은 아닙니다. 그러나 솔로몬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만은 분명합니다. 천 번의 제사를 마친 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솔로몬처럼 간절히 하나님을 바란다면 일천번제뿐 아이라 더한 일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만한 인생의 흔적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김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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